토성의고리

미묘에 대하여

시월의숲 2022. 11. 2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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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나무들, 숲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아 보이는, 하지만 분명히 다른, 그런. 나는 일본의 도심 풍경도 좋았지만, 어쩔 수 없이, 산과 숲, 나무가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미묘'라는 단어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했다. 미묘하게 다른 사람들, 나무들, 숲들에 대해서. 오래전 처음으로 일본에 갔을 때 느꼈던 '미묘'와는 '미묘'하게 다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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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어느 작은 마을길을 걷고 있는데,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그 순간 내가, 아주 오래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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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자연을 제외하고 모든 것들이 다 작아 보였다. 방의 크기, 화장실과 욕실의 크기, 자동차의 크기, 음식의 양 등. 반면 일본의 자연은 광활하고 경이로웠으며 때론 음험하고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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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또 일본에 가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나는 가기 며칠 전까지도 내가 일본에 갈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우연이 나를 일본으로 데려간 것인가 아님 내 열망이 나를 이끈 것인가. 어쨌건 일본에 다녀왔다. 생애 두 번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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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로 둘러싸인 곳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다시 모국어로 둘러싸인 곳에 오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지기는 했지만 어쩐지 그것과는 다른,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내겐 내 삶이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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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 글자도 읽지 못할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져간(어떤 책을 가져갈까 잠시 고민까지 했었다!), 윤성희의 『날마다 만우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문득 책이 말을 건넨다. '날마다 만우절'일 수 없듯이, '날마다 여행'일 수는 없지 않겠냐고. 그래,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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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에서의 4박 5일은 '날마다 만우절'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곳의 낯선 풍경만을 떠올린다면.

 

(2022.11.18.~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