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창의 빈터에서 거대한 허무의 기계를 가동시키는
하늘의 키잡이 늙은 니힐리스트여,
당신인가 나인가
누가 먼저 지칠 것인가
-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중에서
*
오늘도 암스테르담엔 노란 햇빛 비치고 플로렌스에선 그리운
꽃들이 피어난다. 언제나 가볼 수 있을까 죽음다운 죽음이 환히
비치는 곳으로 너의 웃음이 시원한 사이다 한 잔으로 쏟아지고
우리의 고질적인 사랑이 영화처럼 쉽게 끝났다가 심심하면
또 영화처럼 쉽게 시작될 수 있는 곳으로.
- <고요한 사막의 나라> 중에서
*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중에서
*
슬퍼하기 위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
그러나 모든 기억하는 자들의 머리 위로
밤은 오고
나는 나의 별에 잠시 걸터앉아
흘러온 길과 흘러갈 길을 바라본다.
- <시간 위에 몸 띄우고> 중에서
*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히 눈먼 항구.
알타미라 동굴처럼 거대한 사원의 폐허처럼
굳어진 죽은 바다처럼 여자들은 누워 있다.
- <여성에 관하여> 중에서
*
나는 쓰레기통 속에 고요히 처박혀,
그래도 밤은 아름다워,
이 지상의 누더기인 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아름다워라고 말한다.
- <S를 위하여> 중에서
*
많은 사람들을 너는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 < 20년 후에, 지芝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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