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쩌면

시월의숲 2023. 10. 13. 00:04

나처럼 엄청난 길치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모든 길이 매번 새롭고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일 게다. 오늘 출장을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은 정말이지 처음 보는 길이었는데, 익숙한 듯하면서도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그 길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강렬하게.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도로에는 내 차 외에 차들이 거의 없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는 듯, 간간히 트럭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을 뿐. 무언가 태우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감기 때문인가. 운전을 하는 내 몸이 마치 붕 뜬 듯 느껴졌다. 지나치는 모든 풍경들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갑작스레 든 이 강렬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설명할 길 없는 이 감정은. 나는 지금 슬픈가? 설레는가? 하지만 무엇 때문에? 배수아가 어느 책에선가 말한 '이방인 놀이'에 빠져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면 내가 걸린 것은 단순한 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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