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통증

시월의숲 2024. 1. 29. 21:54

저번 주에는 몸살이 나더니, 오늘은 허리가 아프고 왼쪽 눈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아파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지지난 주말과 지난 주말 모두 쉬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는 두 주 동안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나는 주말에 늦잠을 자는 것으로 일주일 간에 쌓인 피로를 풀곤 하는데, 두 주 동안이나 주말에 쉬지를 못했으니 몸에 이상이 올 만도 하다. 이제는 점차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보다 회복력도 떨어지고 몸이 아픈 주기도 빨라지고, 한 번 아프면 오래간다. 정말 서글픈 일이지만 어떡하겠는가. 이제는 정말 목숨을 걸고 운동을 해야 할 시기인데.
 
몸이 아픈 것은 물론 운동을 하지 않는 내 성향과 나이 탓도 있겠지만, 마음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는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이 힘에 부치는 것이다. 그 힘이란 육체적인 것의 의미도 있겠지만, 마음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이제는 집안의 모든 일들이 진심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챙기는 일, 그러니까 가족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고, 결혼을 챙기고, 돌잔치를 챙기는 등등의 일들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고, 아무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그런 일을 하면 할수록 내 몸이 안 따라가는 것이다. 마음이 그러니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여기저기 탈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이런 내 마음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마음의 운동을 하지 않은 탓인가?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 무엇도 챙길 수 없으며, 그 어떤 것에도 엮이고 싶지 않은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특히 가족 간의 관계가) 내겐 점차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오고, 서로 간에 받는 상처들에, 그 수많은 오해들에 나는 지쳤다. 나는 가족들 간의 서운한 마음들과 상처들로부터 놓여나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 무엇도 바라는 것이 없다. 그들도 내게 그 무엇도 바라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은 그저 나 혼자만의 공상으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말하지 않고 끙끙 앓기만 한다면, 나는 정말 크게 병이 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기적인가? 나는 나쁜가?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지금 내가 무척 슬프다는 사실, 그것만은 확실히 안다. 
 
언제나 그렇듯 통증은 나를 고립시킨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이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고문의 순간들 속에 나는 갇힌다. 통증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부터,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떨어져나온다.(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나는 차라리 그 고립의 순간들 속으로,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떨어져나오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다면, 진정 그럴 수 있다면 그 통증은 결코 고통스럽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