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네가 지금 겪는 일들은 모두 지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

시월의숲 2023. 12. 23. 17:38

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제 정말 겨울 같다는 말도 뒤따라 나온다. 모든 것들이 새삼스럽다. 2023년의 마지막 달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12월이 되자마자 업무 때문에 계속 바빴지만 지난 이 주 동안이 절정이었다. 처음 하는 일도 아니었는데, 지난 6월보다 더욱 내 신경은 곤두섰고, 그래서 두 배로 피곤했다. 지난 주말엔 휴일도 반납하고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피로가 마치 납덩이가 되어 나를 내리누르는 기분이었다. 몇 번이고 확인했으나, 확인하는 횟수만큼 더욱 확신이 들지 않았고, 그래서 불안이 가중되었다. 마치 쓰나미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데, 번개마저 함께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몰아치던 나날들을 보내고 지금은 조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 앞으로의 내 미래가 조금은 어두울 것만 같은 기분이.

 

내 지나친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았으니. 나는 결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내심 업무적인 면에서는 완벽하고픈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참, 되지도 않게 우스운 마음이 아닌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모두 만족할만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내 이런 마음들을 이야기했더니, 아버지는 "네가 지금 겪는 일들은 모두 지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우리 삶 자체가 어떤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과정의 연속, 그게 삶인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엔 성숙한 인간이 아니라 죽음, 無 같은 것들이 도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성숙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인가. 말을 아낄 줄 아는 사람? 경계하는 사람?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 보이지 않는 벽을 쌓는 사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무서워지는 것은 왜인가. 인간은 성숙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불안이 내 영혼을 잠식한다. 하지만 내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말들을 아버지에게 털어놓고 온 날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내가 인간관계에 대한 불만들을 이야기하면 아버지는 묵묵히 들으시다 차근차근 조언을 하시는데, 나는 그 말들이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다가도 그게 또 이상하게 위안이 되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도 그런 이상한 위안에 경직되었던 내 몸과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어쩌면 그 위안은, 전적으로 나를 신뢰하고 내 편인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그 고리타분한 말이, 어느 순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