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죽음이라는 현상

시월의숲 2024. 4. 9. 19:44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엉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뒤엉킨 목소리들이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왁자지껄한 고깃집에서 누군가는 취해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가족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을 어떤 이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우리는 고기를 입에 넣었고, 술을 마셨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 소식의 당사자 또한 전화를 받고 묵묵히 밥을 먹다가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는 지금 죽음과 너무 멀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죽음이라는 현상은 바로 지금 우리들의 식탁 위에 와있지 않은가! 나는 갑자기 모든 것들이 연극처럼 느껴졌다. 비극이 아니라 희극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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