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996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2006.

그래, 그래. 바로 그거지. 청춘은 가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도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

장정일, 《보트 하우스》, 프레스21, 2000.

반복으로부터 우리를 가장 크게 구해내는 건 사랑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은 반복의 지옥에 빠진 우리를 번쩍드어 단숨에 변화의 신세계에 올려주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반복되는 나날과 삶으로부터 우리를 일탈시켜주거나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온 맘으로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또 보고 싶고, 또 만나고 싶고, 또 만지고 싶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큰 희망이다. 그것은 반복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닌, 반복 가운데서 쉬게 하고 힘을 얻게 하며 그 곳에서 자유를 얻게 한다.(98쪽) * 숱한 가구들 중에 가장 위엄있고 고상한 것은 의자다. 어떤 의자든지 인격을 가지고 있고 개성을 가지고 있다. 장롱이나 침대는 살아있는 사물처럼 보이지 않아도 의자는 살아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