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기발하며, 냉소와 적의로 무장된 뒤틀림이 있었다. 치열함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다. 그것과는 색깔이 다른 어떤 복받침이랄까, 독기 같은 것이 엿보인다. 장정일의 <보트 하우스>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SM을 체험하게 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등 한마디로 위험하고 금지된 것들을 꺼리낌없이 저지르게 하는(물론 상상으로) 대범함이 그의 소설에는 있었다.
이 소설은 클로버 727이라는 타자기를 둘러싸고 '나는'(소설의 후반부에는 '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이라는 소설가와 애라, 이주민, 와이, 고르비 영감, 저울여인, 만수 등의 인물들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이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중간중간 환상적인 장면들을 삽입시킴으로써 리얼리즘적인 강박에서 벗어나 있었다. 물론 그러한 환상(이주민이라는 여성이 타자기로 변신하는 장면 등)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현실을 비틀고 조롱하기 위함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도 소설가인데, 이는 자연스레 그 주인공에 작가 장정일을 대입시켜 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속 작가는 첫 소설로 <아담이 눈 뜰 때>를 썼으며, 그가 쓴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몇몇 책은 외설시비로 인해 감옥까지 갔다 온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소설은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과 그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또한 엿볼 수 있었다. 그는 가속도가 붙은 세상에 그 나름대로 브레이크를 밟아보려는 것이다.
이번 소설에서의 그가 세상을 향해 취한 태도는 '해변의 파라속 밑에서 한 손에 얼음 재운 콜라를 들고 조금씩 홀짝이며 먼바다를 몇 시간이고 바라보는 것'이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앞으로만 치달아 가는 문명에 대한 작가 나름의 비판일 수 있다. 양계장의 닭들처럼 사육되는 세상에서, 무언가 해야하는 강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반사회적이며 불온한 일인가. 얼핏 무책임하고 패배적인 전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에 어느정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 우리들의 사고가 더 유연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모든 글들이 그러하듯이, 이 소설도 거대한 자학의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그의 문장들은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으며, 잘 재운 독이 글자 사이사이에 포진되어 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러한 칼침과 독침을 온몸으로 맞는 기분이 든다. 그리하여 마치 생의 어두운 절망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이유없는 반항은 아니다. 이유없는 자학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더러운 세상'과 '더러운 운명'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작가 나름의 처절하고도 고통스러운 대응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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