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함정임, 『아주 사소한 중독』, 작가정신, 2001.

시월의숲 2007. 12. 29. 21:01

단편이라 하기엔 좀 길고, 중편이라 하기엔 좀 짧은 함정임의 《아주 사소한 중독》은 사랑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혀와 연관시켜서 형상화한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제목처럼,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중독이란 과연 무엇인가. 작가는 특급호텔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여자 주인공과 그녀보다 여섯 살 아래인 남자 시간강사와의 중독 같은 사랑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려 보인다. 짧지만 선명한 인상을 주는 소설이랄까. 그러한 인상은 아마도 사랑이라는 것의 감각적인 측면이 주인공의 직업과 연관되어 역시 감각적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케이크는 달콤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이를 썩게 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가 썩으면 단 것, 아니 어떠한 음식물도 먹을 수 없게 되므로 그것은 치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단 것을 먹게 되는 것은 그것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는 중독이라 부른다. 그러면 ‘아주 사소한 중독’이란 무엇인가? 해설에도 나와 있지만 사소한 것은 말 그대로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으나 그 사소함으로 인해 그것은 사소하지 않게 된다. 말장난 같지만 말한 그대로다. 쉽게 말해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진부할 대로 진부하지만 여전히 말해지고 앞으로도 말해질 것들, 가장 손쉽고도 대표적인 예로 ‘사랑’이라 일컬어지는 것 말이다. 그러므로 ‘아주 사소한 중독’이란 ‘아주 중요한 중독’과 같은 말일 것이며, 또한 그것은 ‘사랑’이란 말과 동의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주인공이 가장 믿는 것은 그녀의 ‘혀’이다. 그녀는 말한다. “혀는 먹고 말하는 데 소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녀에겐 파트너를 알아보는 데 더 유용하다”고. 이것은 소설의 첫 문단에 나오는 말이다. 또한 소설의 마지막에 “그녀는 점이나 미신 따위는 믿지 않지만 자신의 혀만은 무시한 적이 없다. 그것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그녀는 인간의 이성적이고 정신적인 사랑을 믿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사랑을 믿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형태의 사랑이 더 낫다 혹은 옳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가치를 매길 수도 없거니와 작가는 다만 혀로 대변되는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사랑의 한 속성을 보여줄 뿐이다. 헌데 놀라운 일은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사랑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중독이라는 모순된 현상을 바탕으로.

 

사랑이란 그런 걸까. 가볍지만 가볍지 않으며,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고,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모순덩어리 같은 것? 아, 어렵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이란 모순에 중독된 자들이여! 어렵지만 어렵지 않은 거라고? 이런, 이런. 우습지만 마냥 웃고 있을 수도 없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이한 모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