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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차가운 피부』, 들녁, 2007

스페인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을 읽는내내 내 머릿속은 무언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하나의 계단을 다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계단이 눈앞에 펼쳐진 기분이랄까.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읽은 이 소설은, 처음엔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이야기인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소설은 문명과 떨어져 자발적(?)으로 고립된 한 인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에다가 같은 모험담이 점철된, 한술 더 떠서 B급 괴수영화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두꺼비 얼굴의 괴물들이 떼거지로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이 소설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주인공은 아일랜드 출신의 혁명군으로서 독립을 이룬 아일랜드 사회의 모순을 절감하고 홀로 있을 곳을 찾아 남극의 무인도에 찾아든 한 남자..

흔해빠진독서 2008.03.29

김언수, 《캐비닛》, 문학동네, 2007

그러나 나는 병원에서 일한다고 모두가 의사는 아니며, 공군에 근무한다고 모두가 전투기 조종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조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투기가 거꾸로 날거나 논두렁에 처박혀서 경운기의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 그 큰 바위를 제대로 갈아끼우고, 비행기 이곳저곳을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 하며, 또 누군가는 깃발을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조종사와 비행기만으로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폼나지 않는 일을 해줘야만 비행기가 논두렁이나 하수구에 쳐박히지 않고 하늘을 제대로 날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거다. 대표성의 잣대에 기대지 말고 개별성의 잣대로 사람들을 대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