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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타부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문학동네, 2015.

인터넷 서점에서 '페소아'라는 단어를 검색했더니 이 책이 나왔다. 나는 이미 그의 <불안의 서>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터라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해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글이 아니라 그의 글을 읽고 깊은 매혹을 느낀 이탈리아 작가가 ..

흔해빠진독서 2017.08.20

배수아, 『에세이스트의 책상』, 문학동네, 2003.

나는 이미 오래전에 그 책을 읽었으나, 이번에는 그것의 '재발견'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아니, 재발견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언제나 그 책을 생각하고 있었고, 늘 다시 한 번 더 읽으리라 다짐하고 있었으므로, 기억속에서 잊혀지거나 그저 스쳐지나갔던 것에 불과했던 것을 새삼 발견했다는 의미에서 재발견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그 책에 대해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지속적인 관심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발견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발견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했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지금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아주..

흔해빠진독서 2017.08.13

로베르트 발저, 『산책자』, 배수아 옮김, 한겨레출판, 2017.

그것은 마치, 무대에서 관객에게 즉석에서 말을 걸면서, 그 말을 글로 쓰고 있는, 그러므로 작가 자신도 다음 문장의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미리 계산하고 있지 않다는, 우아하고 유쾌한 자포자기의 즉흥 댄스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까지 성공한다. 물론 그 이외에도 참으로 아름답고 황량하며, 어떨 때는 이빨을 드러낸 듯하고, 방치되고 산만한 언어, 끝을 모르는 풍자와 비꼼, 이 모든 것을 이끄는 무의미함과 무의도성, 그리고 마침내는 인과성과 연속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돌연하고 뜻밖인 결말들. 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 나는 매혹되었다. 나는 펄쩍 뛰어오를 만큼 매혹되었다.(383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이 책 역시, 오로지 배수아라는 작가이자 번역가 때문에 읽게 되었다. 요..

흔해빠진독서 2017.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