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연필

시월의숲 2005. 3. 20. 14:28

 

어제 화장실을 가서 볼일을 보는데,
눈 앞에 웬 연필이 한 자루 놓여 있더군요.
그 연필이 어떻하다가 거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신기한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에도 연필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반가움까지.
저만해도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때,
할아버지께서 손수 깎아주신 연필을
철제필통에 가득 담아 가지고 다녔거든요.
수업시간 만큼의 연필을 가지고 가서
하나씩 바꿔쓰던 기억이 아련하네요.
그 후 아버지께서 선물로
연필깎기를 사다주셨지만 저는,
할아버지께서 깎아주시는 연필이 더 좋았어요.
저희 할아버지께선 연필을 뾰족하게 잘 깎으셨거든요.
요즘 아이들은 그런 추억이 없겠죠.
우선 연필을 담을 필통조차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담고 다니기 어렵게 나오니...
물론 그때가 좋았다는 건 아니예요.
다만,
세상이 편해지는 만큼
인간에게만 느껴지는 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죠.
화장실에서 주워온 연필은 지금 제 필통 속에 있습니다.
연필을 쓰면서 느껴지는
나무 냄새, 나무의 감촉이 참 좋군요.
아직 시험이 하나 남았는데,
그 시험공부는 이 연필로 할까봐요.
왠지 행운이 따를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연필을 보면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을
나무와 나무의 그늘을 생각해 봅니다.

 

 

-200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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