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돈키호테

시월의숲 2005. 3. 20. 14:50

아직 돈키호테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요즘 난 내가 돈키호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 못하는 돈키호테 말이다.

책을 읽으면 그 책 속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고

드라마를 보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마치 내가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환상에 빠진다.

문제는 그 환상에서 깨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이다.

책과 영화 속의 세계는

어떻게 해서든,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지어지는데

나를 둘러싼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엇하나 정해진 것이 없고

무엇하나 확실한 것도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는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눈 감아 버리고 싶은 것일까

그것이 내 나약함의 증거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가 내 삶을 절망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일지라도

그 환상이 깨지길 바라지 않는 마음은

나를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거기 머물게 한다

그만큼 그것은 매혹적이다.

정영 나는 돈키호테가 되어가는 것일까

 

 

-20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