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째서 모두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시월의숲 2005. 8. 27. 11:46

"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의 동반자이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것은 멀리서 보면 유성처럼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인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두 개의 위성이 그려 내는 궤도가 우연히 겹쳐질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볼 수 있죠. 또는 마음을 합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잠깐,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의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연소되어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 어째서 모두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고 각각 타인의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까지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혹성은 사람들의 적막감을 자양분으로 삼아 회전하고 있는 것는 것일까?........고독한 금속 덩어리인 그들은 차단막이 없는 우주의 암흑 속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가 순간적으로 스치면서 영원히 헤어져 버린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약속도 없이."

 

하루키의 장편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절대적인 고독과 적막감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는 계절인 가을이, 가을이 오려하네요. 집앞 골목의 아트막한 담장에 기대어 서있는 감나무들은 이미 제법 많은 잎들을 떨구고 있고, 태양볕과 바람은 이미 여름의 그것이 아닙니다. 가을의 속성이 어쩔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마냥 고독이나 외로움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하루키는 이미 그 대답도 제시하고 있군요.

 

" 우리는 이렇게 각자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치명적으로 버려졌다 해도, 아무리 중요한 것을 찬탈당했다 해도, 또는 한 장의 피부만을 남겨 놓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렸다 해도 우리는 이렇게 묵묵히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손을 뻗어 정해진 양의 시간을 끌어 모아 그대로 뒤로 보낼 수 있다. 일상적인 반복 작업으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솜씨있게.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매우 허전한 기분이 되었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엽이 지는 이유  (0) 2005.09.15
자취를 하다  (0) 2005.09.10
나를 기죽게 하는 것들  (0) 2005.08.21
집착  (0) 2005.08.14
이육사 백일장에 다녀오다  (0) 200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