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자취를 하다

시월의숲 2005. 9. 10. 10:31

자취를 하게 되었다.

학교 근처,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인인, 낡고 조그만한 방.

그 방에서 한 학기를 보내게 되었다.

잘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며칠 마음이 심란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과연 몇가지나 될까 생각하며

조그만한 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처음으로 가지게 된, 나만의 공간...

 

처음 자취방에서 자던 날, 무척 슬픈 꿈을 꾸었다.

꿈에서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저 슬픈 얼굴로 눈물만 흘렸는데,

잠을 깨고나서도 슬픔이 가라앉지 않아서

한참이나 흑흑 거리며 울었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 것인가, 나는.

그 '사나운 폭도 같은 슬픔'이 다녀간 이후

며칠동안 잠을 설쳤다.

아마도 허해진 내 기가 새 방의 기운에 적응하지 못했던 탓이겠지.

이렇게 약해빠진 심성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강해지고 싶은데...

 

앞으로는 더욱 혼자인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지금보다도 더욱.

나는 강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의 시선에, 내 안의 고독에, 외로움에, 슬픔에, 두려움에, 절망에

나는 더욱 길들여져야한다.

 

그래, 그런것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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