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고양이

시월의숲 2005. 9. 29. 18:48

아침에, 도로에서 고양이를 보았다.

 

잿빛의 그 고양이는 한쪽 다리가 차에 치였는지 제대로 걷지도 못한채 도로 한가운데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차들은 사정없이 제 속도로 도로를 질주하고, 어쩌다 고양이가 도로 중앙에 절뚝이며 나올때는 약간 머뭇거리기도 했다.

 

'저러다 차에 치이고 말꺼야'

 

나는 안타까웠다. 예전에, 내가 중학교 때, 그때도 등교길이었는데, 무심코 고개를 숙이며 걷다가 오래전에 죽은, 납작하게 눌려버린 고양이를 밟았었다. 나는 처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딱딱하고 납작하게 눌려버린, 머리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그것은 이미 고양이가 아니었다. 그때의 놀라움.

 

오늘 그 고양이를 보니 그때 생각이 났다. 저 고양이도 저러다 차에 깔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도로를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도로에 갇힌채. 죽음은 그렇게 오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로로 뛰어들었다. 용케도 고양이는 차에 치이지 않고 이리저리 잘 피했다. 나는 발로, 고양이를 밀면서 인도로 나왔다. 손으로 들어서 옮길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기엔 그 고양이가 너무 더러웠고, 무서웠다. 마치 나 자신이 그렇듯.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 것 같은 기분. 이 기분은...

 

그렇게 고양이를 인도로 끌어내었더니, 자꾸 차도로 다시 들어가려 했다. 바보같은 고양이. 그 길로 가면 죽음뿐임을 모르는 멍청한 고양이.

 

발로 제지하니까 주차 되어있는 차 밑으로 들어간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학교로 향했다. 그러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고양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니, 살아있기나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예전에 본 그 고양이처럼 어둡고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길을 잃고 헤매다, 정체를 알수 없는 거대하고 빠른 괴물에 치여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아닌채로...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어진다  (0) 2005.10.15
배짱  (0) 2005.10.06
자작나무 숲길을 걸어  (0) 2005.09.17
낙엽이 지는 이유  (0) 2005.09.15
자취를 하다  (0) 200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