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조경란, 《식빵 굽는 시간》중에서

시월의숲 2007. 5. 5. 11:54

저는 고독해요 엄마.

나는 마지막으로 투정 부리듯 그렇게 말했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쓸쓸히 미소지었다. 참으로 공허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본 어머니의 마지막 웃음이었다.

얘야,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죽음과 만나지 않은 고독이란 고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란다.

 

 

* * *

 

 

가끔 우리는 허를 찔리듯 지나간 한 시절의 부름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어떤 질긴 생의 끈 같은 것이기도 해서 고개를 내젓는다거나 시선을 돌린다고 쉽사리 외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나간 한 시기가 현재로 파고들 때, 그때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가오는 그것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옛 시간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 * *

 

 

사람의 냄새?…… 글쎄, 이제 나는 사람의 냄새라면 충분히 맡을만큼 살아왔는지도 몰라. 어떤 한 사람의 냄새를 맡고 있으면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보일 것도 같아.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의 모습도 가끔 떠오르고는 해. 그러니까 사람의 냄새란 길의 냄새라는 것이지. 서른을 앞두고 어쩌면 나는 아흔아홉 늙은이처럼 귀신이 다 되어버린지도 모르겠어. 이제 나는 좀 다른 것의 냄새를 맡고 싶어. 

 

 

- 조경란, 《식빵 굽는 시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