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윤성희, 《감기》중에서

시월의숲 2007. 7. 11. 18:39

"사람은 순간을 무서워해야해. 자네가 비겁해진 순간이 있었다면 그 한순간이 평생을 따라다닐 거야."

 

- <등 뒤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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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남자를 바닥에 누이더니, 남자의 몸에 박힌 나사들을 풀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봐라, 나사들이 다 녹슬었구나. 아버지는 남자의 몸에서 오십개가 넘는 나사를 빼냈다. 나사 빨리 풀기 대회라는 게 있다면 틀림없이 아버지는 그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을 것이라고, 꿈속에서 남자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나사가 빠지면서 생긴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나왔다. 바람이 구멍들을 넘나들었다.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어요. 그 사람을 보려고 기차를 타고 세 시간이나 갔어요. 앞으로 연애를 하려면 꽤 피곤하겠어요. 그건 그렇고, 아버지 얼른 이 구멍들을 막아주세요. 추워요.

 

- <감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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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을 해본 사람들은 고백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알게 되지."

 

- <재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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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은 우리들의 그림자를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그 그림자들이 서로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들은 서로의 가슴을 밟고, 서로의 얼굴을 밟고, 서로의 웃음을 밟았다. 하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부분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