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르 클레지오, 《조서》, 민음사, 2001.

시월의숲 2007. 6. 14. 21:44

성가셔진 자신의 육체에 대한 감각은 사소한 일들을 증폭시켜 그의 존재 전체를 고통으로 가득한 괴물 같은 대상으로 만들었고, 그때 살아 있다는 의식은 그저 물질에 대한 짜증스러운 인식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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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바라는지 아세요? 난 사람들이 날 가만히 내버려두었으면 해요. 아니, 어쩌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요…… 난 많은 것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아닌 일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나보고 하라고 하는 일. 내가 여기 왔을 때, 간호원들이 내게 얌전히 굴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내가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난 얌전히 굴거예요. 죽는 것, 아뇨,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말이죠, 죽는다는 건 분명 그다지 휴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그건 마치 태어나기 전과도 같아요. 다시 소생하려고 안달할 것이 분명한데, 그건 피곤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사람은 존재하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지요. 그것은 그저 하나의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것이야말로 인식이 유일하게 도달하는 곳입니다. 아무리 다른 방식을 취하더라도 인식은 막다른 길에 이르고 맙니다. 그러면 인식은 인식이기를 그치게 되지요. 인식은 과거형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 인식은 대번에 과장됩니다. 너무나 거대하고 너무나 압도적인 것이 되어 인식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존재하는 그대로 존재한다 , 바로 그것입니다. 존재하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