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에 장편소설이라는 문구를 보고 책을 읽어나가다가 어, 이거 단편소설 아니야? 라는 의문이 들었다. 설마 출판사에서 실수를 했을까... 좀 더 읽다보면 알 수 있겠지 생각하며 계속 읽어나갔다. 아, 이 소설은 이라부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 다섯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구나, 이 소설을 장편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구나! 재밌고 신선한 발상이었다. 제목은 생각이 나질 않지만, 일본영화 중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다. 각각 기상천외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한 의사를 찾아와서 치료를 받는다는 설정 말이다. 그게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모두 다섯 명의 환자가 이라부라는, 전혀 의사 같지 않은, 무작정 주사를 놓아대고, 진지함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다. 그 환자라는 사람들이 가진 문제라는 것이 또한 가관인데, 칼이나 송곳 등 날카롭고 뾰족한 것만 보면 기겁하는 베테랑 아쿠자, 갑자기 공중그네를 하지 못하게 된 서커스 단원,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충동 때문에 고민하는 사위, 잘 나가는 투수였지만 공을 받아 제대로 던지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야구선수,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갑자기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어버린 여류작가... 이렇다. 세상에, 야쿠자가 칼을 무서워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공중그네를 못하는 서커스 단원은 어떻고! 이렇듯 이라부를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라부의 황당한 진료를 받게 되고 차차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며 결국 그것을 이기게 된다.
그들은 왜 그런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상처를 치유하려면 그 상처 부위가 어딘지 일단 확인을 한 다음 약을 바르던지 꿰맬 것인지 결정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라부는 깊이 가라앉아 있는 문제의 원인을 표면 위로 끌어올려 그것과 환자가 직접 대면하게 하여 그것을 치유한다. 마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처럼,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는 감정들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 그것을 분출하게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우리 안에 억압되어 있는 것, 뒤틀려 있는 것, 켜켜이 쌓여있는 먼지 같은 것을 가끔씩 털어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이 소설은 그러한 치유의 과정을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과장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재미와 웃음을 안겨준다.
책 말미에 실린 역자의 말처럼, 나도 이라부의 환자로서 진료받는 심정으로 이 소설을 읽었다. 살면서 슬럼프랄까, 삶이 파놓은 구덩이에 빠질 경우가 적어도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어찌 좌절 한번 해보지 않은 인생이 있을 것인가. 그럴 때마다 유쾌하게 넘겨버릴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칙칙하지 않고 산뜻하게! 물론 현실에도 소설처럼 이라부 종합병원이 있어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그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간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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