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고

시월의숲 2007. 11. 5. 12:22

가끔 내가 내 손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손의 생김새, 손가락의 길이, 손톱의 모양, 지문 같은 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약간 쓸쓸해진다. 손은 몇 겹의 탈을 바꾸어 쓸 수 있는 얼굴과는 달리 너무도 정직하게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수단인 것만 같아서,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것만 같아서 얼마간 쓸쓸해지는 것이다. 굳은살 없는, 메마른 내 작은 손. 무엇을 그리 감추려고만 했을까. 그냥 손일뿐인 것을. 그것이 ‘나’인 것을.

 

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으면서 내가 감추려 했던 것, 가식적인 웃음 뒤에 가려진 진실의 얼굴, 한 사람의 내면 깊숙이 어른거리는 심연의 파도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우리는 저마다 무엇을 감추고 사는가. 그렇게 감추는 것들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혹은 숨어드는가. 우리는 진정 우리가 감추고 있는 것들을 드러내고 살 수는 없는가. 삶은 그렇듯 숨길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흉터를 하나씩은 반드시 남기는 것인가. 잘라내 버린 여섯 번째 손가락처럼 우리는 우리를 이루고 있던 것을 떼어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처음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여섯 번째 손가락처럼 본질적인 것들을.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장운형이라는 조작가의 사람의 신체를 직접 뜬 조각 작품을 세 번이나 보게 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급기야는 그를 만나서 왜 그런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가를 묻지만 그는 알 수 없는 웃음만 짓는다. 그 후 장운형의 여동생으로부터 그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녀가 보내준 그의 글을 읽게 된다. 이 소설은 처음 소설의 문을 여는 주인공이 실종된 조각가의 글을 읽게 되는, 말하자면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결국 이 소설은 장운형이라는 조각가의 이야기인 것이다.

 

직접 사람의 신체를 뜨는 행위를 통해서 작가는 알맹이와 껍데기,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거짓과 진실, 인간들 사이의 거리 같은 것들을 효율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고찰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 중에서도 손은 이 소설에서, 한 사람의 비밀을 담고 있기도 한, 어쩌면 가장 정직하여 숨길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차가운 그대의 손에 나는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가. 그 손을 잡고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손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들 저마다의 견고한 껍데기에 갇혀서, 서로의 껍데기만을 만지고 바라보면서 그렇게 늙고 결국 죽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그냥 그렇게 죽게 하지 않는다. 소설의 말미에서 보여주는 파괴적인 행위는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일종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틀을 깨는데서 오는 파괴적인 행위가 마치 고통의 승화를 뜻하는 것 같아 가슴이 뻐근했던 것이다. 그러한 폭력성은 어쩌면 불가항력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껍데기는 그만큼 견고하니까. 하지만 그것을 깨고자 하는 의지만 강하다면 의외로 쉽게 깰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아마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