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폴 오스터, 『뉴욕 3부작』을 읽고

시월의숲 2007. 11. 14. 20:58

예전에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라는 책을 읽었다. 소설인 줄 알고 읽었는데 수필이었다. 그 황당함이라니. 제목이 재밌어서 무작정 빌렸었는데, 다음부터는 잘 알고 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기를. 내가 아쉬웠던 건 그 책이 소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지 폴 오스터라는 작가에 실망했다는 뜻은 아니니까.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의 어려움과 등단하기 전의 방황, 가난 같은 것이 그 책의 주된 내용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나름 잘 읽혔으며 재미도 있었다.

 

아, <빵굽는 타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뉴욕 3부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자꾸만 엇나가려 한다. 어쨌든 이번에 읽은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은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이렇게 세 편의 중편이 들어있는 소설집이었다. 각각의 소설들은 그 제목만큼이나 흥미롭게 짜여져 있었다. 그러니까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 했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자신의 정체정에 관해서.

 

생각건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탐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거기서 '나'란 폴 오스터라는 한 개인일 수도 있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탐구를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파고 들어가고 있다. 또 겉으로는 탐정소설 혹은 추리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그것은 작가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탐정소설과는 거리가 있었다.

 

탐정소설에서의 탐정은 사건을 해결하거나 용의자를 찾는 사람일텐데, <뉴욕 3부작>에 나오는 탐정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찾는 사람이었다. 물론 작가는 처음부터 탐정이 찾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나, 소설을 읽어나가다보면 탐정이 찾고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신기하게도!

 

대체적으로 추리 소설 고유의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글쓰기와 자아 정체성에 관해서 깊은 사유를 이끌어낸 상당히 독특하고 매혹적인 탐정소설이자 심리소설이었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인문학적 지식들이 흥미로운 이야기와 적절히 결합되어, 한마디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세 편 다 결말에 이르러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여정의 당연한 결말일지도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