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고

시월의숲 2007. 11. 23. 18:34

내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도회적인 감성으로 무장한 소설들을 읽고 있으면 왠지 모를 이물감이 몸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다. 그렇다고 내가 태어난 곳이 창문을 열면 산과 들판 밖에 보이지 않고, 읍내로 나가는 버스가 서너 대 밖에 없는 곳이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읍내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완전히 시골사람도 아니고(굳이 분류하자면 시골 쪽이겠지만) 그렇다고 도시사람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환경이 한 사람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어정쩡한 내 출생지처럼 나도 어정쩡한 인간일 것이고, 사실 그렇다. 그래서 소위 쿨한 것으로 통하는 도회적인 감성은 나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래, 그 이물감이 반드시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기분이 좋다 나쁘다, 의 문제는 아니다.

 

어쨌거나 어정쩡한 기분으로 읽은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는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도시 중의 도시(?), 서울에 사는 서른 두 살의 미혼녀 오은수. 소설은 그녀로 대표되는 도시 커리어 우먼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사랑, 우정, 결혼 등의 문제를 가볍고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도시에 사는 그녀들은 어떻게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향유하는가. 결혼은 인생의 무덤인가, 아니면 새로운 출발점인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인가, 결혼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인가. 사랑과 결혼은 진정 별개인가. 결혼이란 과연 무엇이며 사랑이란 또 무엇인가.

 

진부하고 진부한 물음이다. 하지만 그것만큼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는 것도 없으리라. 주위를 돌아보면 온통 남녀 간의 이야기뿐이지 않은가. 때론 그것이 나를 숨 막히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생을 이끌어가는 것은 성욕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으니. 어쨌건 남녀 간의 사랑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래서 도시 남녀들의 사랑과 결혼은 어떠했느냐고? 이 소설에서 작가는 그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말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냥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 오은수는 모든 남자들을 떠나보낸 후(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서) 빗속의 정거장에 홀로 서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가장 먼저 도착하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타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래,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인생을 무작정 오는 버스에 오롯이 실려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들이 다 그 버스에 올라타고 있다고 해도.

 

예전에 읽은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생각난다. 그 소설보다는 덜 신선했지만 좀 더 섬세하게 ‘그녀들’의 일상을 그려낸 것 같아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어정쩡한 정체성을 가진 내가 읽기에 이것은 달콤한 ‘너의’ 도시일 뿐이야, 라며 책을 덮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나 결혼은 도시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므로(요즘은 딱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이 소설을 통해 사랑이니 결혼이니 하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 번쯤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한마디로 뭐랄까, 달콤하지만 좀 씁쓸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