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방현석, 『랍스터를 먹는 시간』을 읽고

시월의숲 2007. 11. 29. 18:51

그동안 너무 개인적이고, 사변적이며,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들이 담긴 소설만 주로 읽은 것 같아 이번에는 좀 더 큰(?) 이야기를 하는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에 이 소설을 집어 들었다. 소설이란 어차피 작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겠지만 때론 일상적 것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이나 사회 구조 혹은 집단적인 이념을 담은 소설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그러한 소설들을 너무나 멀리해왔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왠지 그러한 소설들이 너무 무겁고 지겨워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서 과거에 존재했던 모순들이 결코 사라졌다거나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쨌거나 나의 협소하고도 개인적인 세계관에 자극을 주고자 읽은 이 소설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이 소설집에는 중단편 소설 네 편이 실려 있는데,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과 관련된 이야기를, <겨우살이>는 전교조 교사로서 해직되었다가 복직된 선생의 이야기를, <겨울 미포만>은 미포 중공업의 노조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모두 시사성을 띤 이야기들로서 한 번 쯤 생각해 봄직한 내용이었다. 소설들은 하나같이 내용과 형식간의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한 모습이 역력했다. 과거 일부 카프 소설가들의 선동적일 뿐 예술성이 없던 소설과는 달리 작가의 사상과 주제가 구성과 잘 어우러져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요즘 세상에 과격한 선동 문학이 먹힐 리가 없겠지만.

 

어쨌거나 베트남을 다루고 있는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일고 나서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으며(베트남전에 관해 어떠한 지식도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였지만) <겨우살이>를 읽고 나서는 결말의 충격과 함께 인간과 규범 사이의 간격에 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미포 중공업의 노동조합원들을 다룬 <겨울 미포만>은 앞의 세 소설에 비해 잘 읽히지가 않았다. 책의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는 <겨울 미포만>이 마치 앞의 세 소설들의 완결판인냥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노동조합원들이 가진 이상이 시대가 바뀌면서 점차 퇴색되어 가는 과정과 그러한 좌절을 딛고 새로운 결속을 모색하려는 모습이 너무나 건조하고 재미없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러한 노동자들의 삶과 이상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또한 나부터 집단이 아닌 개인적인 사고와 생활방식에 젖어 그들의 고뇌가 깊이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리얼리즘적인 소설보다는 환상적인 소설이 좋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를 전면에 다루고 있는 소설들은 분명 읽기가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버겁다는 것은 소설이 지루하다거나 그렇지 않느냐를 떠나 일단 그러한 소설들을 읽는다는 것은 사회적 문제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계와의 대면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러한 압박을 견디면서 소설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 자기 자신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린 우리들이 읽기에는 상당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아니라면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그것이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임을 알기에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결국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너무나 이기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