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함정임, 『인생의 사용』, 해냄, 2003.

시월의숲 2007. 12. 14. 20:07

<소설가 함정임의 프랑스 파리 산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인생의 사용』이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가 다년간 프랑스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기행문은, 정말 파리의 여러 거리를 걸으면서 쓴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과 작가 특유의 사색적인 분위기가 어우러져 읽는 내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은 작가의 발자취를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파리의 거리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한 번에 다 읽지 못하고 작가가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종종 공원 벤치에 앉아 쉬듯이 나도 간간히 읽기를 쉬면서 한숨 돌린 후 다시 책을 펼쳐들곤 했다.

 

물론 파리에 대한 이 기록은 그녀가 본문에서 언급했다시피 파리에 대한 그녀만의 기록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그것은 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차라리 ‘나의 무지와 오독이 저마다의 파리를 자극하기를. 그리하여 인생의 한 시기를 파리에서 사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만큼 파리는 여러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각각 다른 감흥으로 받아들여지는 도시라는 사실을, 파리에는 수없이 다양한 예술과, 그 예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음을, 그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냥 겉멋이 아닌 삶의 진지한 어떤 면을 파리에서 발견하고 자극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파리의 유명한 미술관과 노르트담, 에펠 타워가 아니라 프랑스에만 있는 예술적 분위기에 취해보고 싶다.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카페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좋겠다. 마음이 내킨다면 하얀 턱수염이 덥수룩한 거리의 화가에게 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아니면 동유럽에 올라온 여인의 무언극을 하염없이 구경해도 좋겠지.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롭게.

 

그냥 막연히,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파리에 대한 동경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듯, 언젠가는 그것이 나를 파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리하여 인생의 한 시기를 파리에서 사용할 수 있기를. 늘 대답 없는 파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