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내가 사회 부적응자가 아닌가 의심한다. 인간이 혼자서 살 수 없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들과 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때론 몸서리 처칠 정도로 섬뜩하고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자그마한 신뢰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인간에게 배신을 당했다거나 실망한 적이 있던가? 이 알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관계에 대한 낯섦은 종종 나를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뜨린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살아야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았다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러한 의문에 직면할 때마다 할 말을 잃고 혼란에 빠진다.
여기, 부끄럼 많은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한 인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요조. 스스로 인간 실격자이며 진정한 폐인이라 일컫는 사람이다. 아니, 소설 속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이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다섯 번의 자살기도 끝에 서른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은 작가 자신의 자서전이라 해도 될 만큼 소설 곳곳에 그의 삶이 투영되어 있었다. 소설 자체가 작가 자신의 굴곡 많은 삶의 고백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그러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고백이 오히려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인간들을 비판하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전략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공감을 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은 자의식의 과잉처럼 느껴지는 주인공의 고백 속에서 앞서 말한 인간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읽어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얼핏 이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패배자의 헛소리 정도로 보아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너무나 나약하고, 거절하지 못하고, 인간들을 상대할 무기가 고작 익살뿐인 인간이라니. 하지만 패전 후 일본 젊은이들이 왜 이 소설에 열광했는지,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나약한 인간인 우리가 극도로 나약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과도 같기 때문이다. 인간의 나약함에 매료되었다고 한다면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일까.
그것은 패전 후의 일본이라는 시대적 상황 하에서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통하는 면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세계는 허위와 기만과 잔혹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들인가. 그러한 불가항력적인 모순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더욱 교묘하게 우리들의 의식을 갉아먹는다. <인간 실격>은 그렇게 우리들의 의식을 좀먹는 것들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몸부림의 기록이자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의 기록 혹은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절망과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찬 소설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묘하게 주인공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게 되는 특이한 힘을 지닌 소설이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직접 겪지 않더라도, 그의 수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절망을 맛보았다면 그것으로 우리에겐 충분한 것이 아닐까? 바닥까지 가본 사람만이 그 바닥을 딛고 튀어 오를 수 있고, 한바탕 앓고 난 후에 본 세상은 전과 달라 보이듯이. 그러므로 우리, 그렇듯 허망하게 죽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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