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완벽히 홀로 산다는 것

시월의숲 2008. 7. 20. 13:35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기온이 좀 내려가기를 바랐건만 여전히 후덥지근한 날씨다. 오늘은 어제만큼 비가 오지 않았지만, 하늘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고 습기가 많아 조금만 움직이면 물컹한 스펀지처럼 땀이 쏟아질 것 같이 불쾌한 날씨다. 마치 물 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숨 쉬기가 힘들다.

 

오늘은 일요일. 내게 일요일은 결코 쉬는 날이 아니다. 일요일엔 일주일간 모아놓은 빨래를 해야하고, 일주일치 장을 봐야하고, 더러워진 방을 쓸고 닦아야 하며, 사온 식재료들로 반찬을 만들어야한다. 집안일이라는 것이 해도해도 끝이 없다는 말을 몸으로 느끼면서, 일요일을 보낸다. 오늘처럼 습기가 많은 날이면 움직이기가 더욱 힘이 드는데, 더구나 빨래가 마르지 않아 내 짜증은 배가된다.

 

가끔 나는 내 삶이 너무 일찍 나를 삶의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이 모든 일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일일지라도 어쩐지 나를 골탕먹이기 위한 누군가의 계략같이 생각되는 것이다. 이런 걸 피해의식이라고 하나? 하지만 그런 생각이 지속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씩 힘이 들때가 있다. 아무도 내 이런 힘듦을 알아주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나는 그것이 못내 속상한 것이다. 내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동생이라는 사람들에게.

 

하긴 이런 내 생각들, 새삼스럽다. 이 모든 것들,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들일 뿐인데, 이젠 정말 내가 해나가야 하는 것들일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완전히 혼자가 되어 살아나가야 하는 것과 혼자가 아닌데 혼자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하는 것은 분명 다르지 않을까? 허나, 이런 말, 비겁하다. 실제로 나는 완벽히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음식 살 돈을 준다. 나는 그런 물질적이고도 금전적인 것들을 그들에게서 빚지고 있다. 그 댓가로 나는 봉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완벽히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게 혼자가 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완전히 홀로 되어야함을 뜻하는 것일게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내가 혼자라고 느끼는 것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들을 내게 베푼다. 그래서 내 이런 생각은 야비하고 이기적이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좀 알아달라는, 떼를 쓰는 어린아이의 불평에 지나지 않는다.

 

아, 하지만 어떻게! 나는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내 피를 빨아 먹는 흡혈귀들로만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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