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무제

시월의숲 2008. 10. 21. 22:47

무언가 절실히 결여된 듯한 느낌은 내가 진정 무언가를 여실히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님 그렇게 느끼도록 내가 나를 강요하기 때문일까. 다시 말해서, 그러한 감정은 발열체처럼 내 안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외부에서 나에게 흘러들어오기 때문일까. 차가운 방안에 식은 빵처럼 앉아 있자니 문득 그런 상념이 든다. 누구나 다 외롭다고 몸서리를 치는 가을, 그 본연의 속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렇게 느낀다고 아우성치는 나를 둘러싼 것들 때문인지 말이다. 아침저녁은 무척이나 춥고 한낮의 태양은 아직 덥기만 하고, 나는 머릿속이 몇 겹의 두툼한 외투를 껴입은 듯 뻑뻑하기만 하고, 책은 읽히지 않고(아니 읽지 않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나는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만 하고 있고,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내 시간의 대부분을 갉아 먹고있고, 나는 아무 생각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고... 매일매일 나는 자학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밥을 챙겨먹는 일이 점점 귀찮아지고 있다. 때때로 나는 어떤 제목 아래 내 생을 써나가야 할까 고민한다. 무제인 상태로, 무제가 제목인 상태로 내가 내 삶을 써나가는 것에 나는 만족하는가?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묻고 묻는 질문. 횡설수설. 중얼중얼. 결론없는 밍기적거림. 박차고 일어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이 망설이고만 있는가. 결단. 후회하지 않을 결단. 후회하지 않을 결단이 없다면 최소한의 후회만을 남길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 내게, 절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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