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핑계

시월의숲 2008. 10. 25. 22:14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낮에는 가을같지 않게 따뜻한 날씨였는데 어제 오늘은 약간 춥다고 느껴질 만큼 쌀쌀한 날씨였다. 단풍이 채 들기도 전에 겨울이 오는 것일까? 지난 월요일에 배달 된 전기매트를 어제 저녁에 처음으로 틀었다. 온도를 낮게 틀어서 그리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하면 괜찮은 듯 했다. 내가 있던 곳보다 이곳에서의 겨울이 좀 더 추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면, 뭐 그럭저럭 지낼만도 할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다 견뎌지는 거겠지.

 

텔레비전이 있고, 컴퓨터가 있고, 오디오가 있으니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아, 물론 핑계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지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마음! 책을 읽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오디오로 인해 힘들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일을 한다는 것. 생계를 위해 일을 하기 전에는 시간이 넘쳐났기 때문에 그나마 책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아서 좀 속상한 마음까지 든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피곤하다고 느껴서인지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니, 오래전에 결심했던 생각,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공부하겠다는 그 결심이 희미해지는 것이다. 아, 이런 내 나약함이라니.

 

그래서인지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가진 것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어떤 대상에 대한 절실함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내 경우, 부족한 것들이 많을때는 최소한 가난에 대해서라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을 쓰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는데, 돈을 벌고 부족한 것들이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정신적으로 절실하게 고민하거나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건 정말 슬픈 일이다. 그것은 점차 바보가 되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질적으로 최소한의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노력, 의지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가지려고 하는 욕심은 끝이 없고, 그러다보면 그 욕심에 눈이 멀어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어지는, 그런 상황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나도 끊임없이 나 자신을 갈고 닦아야겠다. 책에 집중이 안된다거나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 어려운 문제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균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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