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술주정

시월의숲 2008. 10. 22. 22:04

사랑에 대해, 결혼과 결혼 후의 차갑게 식은 사랑과 관계의 지리멸렬함과 숨막힘에 대해 나는 다 아는 듯 이야기 하지만 정작 내가 아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인가. 진정으로 알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나는 시니컬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일까?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나눈 몇몇 대화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지금은 술을 마신 상태라 정신이 온전히 맑지 못하고 타자를 치는 손가락들이 제멋대로 움직이지만 그래도 술자리에서 나눴던 대화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그들은 모두 결혼을 했으며 자식이 있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느낀 것들은 모두 내가 일찌감치 짐작했던 것들과 같았다. 그 중 어떤 동료는 나에게 결혼도 하지 않고 아직 애인도 없는 내가 어떻게 그러한 것들을 다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런 것들은 애인이 없고 결혼을 하지 않으며 자식이 없어도 다 알 수 있는 것들이라고. 너무나 진부한 대화들이라서 대답하는 것조차 진부하기 짝이 없다고. 나는 너무나 자명한 그들의 대화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비웃음이 나오기도 하였으며, 얼마간 슬퍼지기도 했다. 도대체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어쩔 수 없이, 또 어김없이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도 그들은(타의에 의해) 결혼을 하고자 하고, 그렇게도 후회를 한다. 그리고는 한 번 살아봐, 라는, 살아보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 아니, 살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굳이 그렇듯 지리멸렬한 것들을 알기위해 그러한 삶을 살아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무엇 때문에 그리해야하는가? 함무라비 법전 어느 한 귀퉁이에 그렇게 살아봐야 한다고 적혀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설령 그렇게 적혀있다고 한들, 그것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라도 된단 말인가? 웃기지도 않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대표되는 남녀간의 모든 규범들,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해야하고, 연애할 때는 어떠 해야하며, 결혼을 하고 나서 아이는 몇이나 낳아야 하며, 아이를 낳고나서는 어떻게 길러야 할 것이며, 아이를 다 기르고 난 후에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이런 내 생각이 아직 애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앞서도 말했다시피 애인이 없어도,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도대체 왜 그러한 것들에 목을 메야 하는가? 나는 그것이 의아하고 불가해하다. 그래, 난 지금 술을 마신 상태다. 그래서 뭐? 그게 이 글의 내용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술을 마시면 나는 말이 평소보다 서너 배는 많아진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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