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욕망과 욕망이 떠나간 자리

시월의숲 2008. 11. 6. 00:17

지난 월요일 태백과 정선에 다녀왔다. 혼자 간 것은 아니고 직장 동료들과 함께였다. 처음 가 본(생각해 보니 울진에 와서 해 본 것들이나 가 본 곳들은 모두 나에겐 처음이다) 태백과 정선은 황량함과 욕망이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의 도시였다. 태백이 황량함과 삭막함의 도시였다면 정선은... 아니, 정선의 이미지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강원도 정선을 본 것이 아니라 그곳의 카지노를 본 것이니까. 그것이 정선이라는 도시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일지라도 그것으로 정선이라는 도시를 정의하듯 말하는 것은 뭔가 상당한 편견에 사로잡혀 부당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카지노에서 본 사람들의 얼굴과 분위기와 웅성거림이 떠오른다. 모두들 한 순간의 운에 기대어 돈이 새어나가는 줄도 모르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성석제의 소설이었던가? 노름과 인생의 관계에 대해서 상당히 철학적으로 써놓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카지노에서 하는 돈놀음에는 우리가 모르는 인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노름에 목숨을 걸거나 카지노에 빠져서 집이 넘어가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의 변명의 철학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십만원, 백만원, 아니 그 이상의 돈도 단 몇 분만에 날아가 버리는 곳. 따는 것도 한 순간, 잃는 것도 한 순간인 곳. 그 한 순간의 희비가 사람들을 그것에 빠지게 하고, 열광하게 하며,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너무 드라마틱하여 드라마틱하게 느낄 겨를도 없다. 그래서 그만큼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오천원 정도 잃으니 흥미가 떨어져 그만두어 버렸지만.

 

카지노보다 오히려 태백산 아래에 위치한 석탄박물관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사양산업이 되어버린 탄광의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나라 산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석탄의 흥망성쇠를 보고 있자니 약간 가라앉은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한강의 <검은 사슴>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그 소설에 묘사된 막장작업과 그에 따른 사고, 쇠락한 도시와 병든 사람들의 묘사 등이 오버랩되면서 박물관 안에서의 모든 것들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 했다. 한 때 석탄산업으로 번창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그 쇠락함이 석탄가루처럼 진하고 급기야는 내 몸을 이리저리 훑는 듯 느껴졌다. 그렇게 욕망이 넘쳐났던 곳에서 그 욕망이 떠나가고 남은 것은 황량함과 삭막함 뿐이었다. 나는 태백에서 석탄가루처럼 시커먼 황량함과 삭막함을 폐속 깊이 들이마셨다.

 

우연이었을까? 오늘 안현미 시인의 시집 <곰곰>을 빌렸는데, 책 날개에 시인의 고향이 태백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전에 신문지상에서 읽고 인상 깊어서 내 플래닛에도 심어 놓았던 안현미 시인의 <거짓말을 타전하다>라는 시를 다시 읽어본다. 아마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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