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운동을 하는 여러가지 이유

시월의숲 2008. 11. 13. 20:26

사람들은 왜 운동을 하는 것일까?  건강을 위해서라거나 재미를 위해서 혹은 집단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라면 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과 재미와 친목을 위해서 운동을 하니까.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운동을 하는 이유를 다 설명했다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아,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과격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는 몇몇 남자들의 경우 말이다. 그들에게 운동은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을 벗어나 마약과도 같은 중독증세가 있는 듯 느껴진다.

 

어제 직장 동료들, 그리고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 몇 명과 족구를 했다. 그 중 한 명은 벌써 며칠 전부터 나에게 족구할 인원이 모자란다며 자신들과 같이 하지 않겠느냐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강요를 했었다. 처음에는 못한다며 거절했지만, 딱 한 명이 모자란다며 윽박지르듯 나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가에 되었다. 나는 운동이라면 거의 잼병인데다 족구나 축구 같은 발로 하는 운동은 더더욱 질색이라서 거절을 한 것이었는데,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동료이고 자꾸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 하며 나간 것이다. 그냥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 주겠다는 마음으로. 결과적으로 내게 남은 것은 몇 번의 슬라이딩으로 인한 허리와 팔의 통증 뿐이지만.

 

내게 족구를 강요한 그 사람은 몇 주 전부터 인원을 모아서 족구와 축구를 하였는데, 요 며칠은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하였다. 나는 어제 하루만 해도 온몸이 얻어 맞은 듯 아팠는데, 그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족구와 축구를 그렇듯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니, 몸이 좀 피곤한 것이 대수겠는가. 자주 공을 찼기 때문에 나처럼 거의 백만년만에 해 본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를지도 모를 일이고. 어쨌든 그런 그를 보면서 그에게 운동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것처럼 그에게는 운동이 취미의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취미치고는 타인들(특히 나처럼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까지 피곤하고 귀찮게 만든다는 점에서 참 괴팍한 취미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도 나에게 공차러 나오라는 것을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오, 맙소사! 나는 족구에 흥미가 전혀 없다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족구를 하러 모인 사람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족구를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족구와 축구를 제법 잘 하는 사람들이었다. 족구를 하러 간 청소년수련관 주변의 농구장과 운동장, 실내 체육관에는 밤인데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운동하는 남성들로 들끓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보다는 남자들은 왜 저렇듯 운동을 좋아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내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들었다. 앞서 들었던 몇 가지 흔한 예를 들기에 그들은 너무나 열광적이었고, 신나보였으며, 격렬하게 집중했던 것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수컷으로 태어난 인간이 가진 어떤 본능적인 기질 때문일까? 아니면 열중할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이건 내가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희열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힘껏 몸을 사용해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분출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묘한 중독성이 있는지도.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그런 면에서 나는 그러한 남성적 기질(?)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그것을 불평하려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싫어하고, 못하는 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학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몸이 부서져라 운동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인간도 분명 존재하고 책이나 음악을 들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인간도 분명 존재한다. 인간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다 같은 남자라고 해서 축구와 족구를 좋아하고 반드시 해야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 제발 자신의 취미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기를!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다. 나는 그들의 취미를 인정한다. 그리고 그 열정에 들어있는, 순수한 맹목성을 동경한다. 그러니 그들도 내 취미와 열정을 인정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하지, 사람의 마음이란  (0) 2008.11.21
알고 보면  (0) 2008.11.19
허허로운 마음으로  (0) 2008.11.10
욕망과 욕망이 떠나간 자리  (0) 2008.11.06
유한하므로 그립다  (0) 2008.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