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모두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이야기

시월의숲 2012. 2. 9. 21:10

에쿠니 가오리의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 때문에 그 책을 읽게 되었는데, 사라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타까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후에도, 그 전에도 나는 언제나 사라진다는 것, 시간의 흐름과 상실 혹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늘 생각하며 살았다. 왜 였을까? 왜 나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사라지지 말기를, 사라진다고 해도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살았던 것일까? 어릴 적 나를 낳아준 이의 유폐된 삶과 죽음, 나의 외면과 두려움, 진실을 알지 못했다는, 알고 싶지 않았고 사실은 알기를 두려워 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가까웠던 이의 죽음을 여러차례 접하고 난 후,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슬픔에 몸을 떨며 이러다 나도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두려움은 내가 살아있다는 명명백백한 증거였고, 그때부터 나는 사라진다는 것, 그것의 총체적인 결과물인 죽음에 관해 특이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무엇에든 '내가 사라져버린다면'이라는 말을 앞에 넣어서 생각하는 버릇을 갖게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사라져버린다면, 내가 기록한 이 글과 이 공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랜 시간 접속하지 않은 기록을 가진 내 아이디는 관리자에 의해 정리가 될 것이고, 결국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결국엔 존재했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리겠지.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읽고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내가 언제 기뻐했고, 언제 슬펐으며 어느 때는 누군가를 감히 좋아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내가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던 말, 늘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말, 인간은 늘 외롭고, 인간 지닌 근원적인 고독은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고유의 영역이라는 사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로하는 말에 지나지 았았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자연적으로 터져나오는 슬픔.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비극적인 것에 마음이 더 끌린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라는 말보다는 모두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이야기라는 말이 더 와 닿는 것이다. 모두 언젠가는 사라진다. 이 글도, 이 공간도, 나도, 이 시대도 언젠가는. 그렇다면 그렇게 슬퍼할 일도 없는 것인가? 인간을 이루는 감정의 밑바닥에는 슬픔이 있다고, 인간은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언젠가 말했었지. 하지만 불쑥불쑥 찾아드는 게릴라성 슬픔을 방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슬픔의 눈물은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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