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차분하고 조금은 슬프게

시월의숲 2012. 1. 24. 16:14

설이 지나갔고, 나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큰집이 울산이라 울산에 다녀왔는데, 가는 길은 기차를 이용했다. 오랜만에 타 본 기차는 여전히 맘을 설레게 하는 낭만을 가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짐보따리를 든 사람들이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기차의 호수와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짐을 올리고, 자리에 앉는다. 차창 밖으로 겨울풍경들과 크고 작은 기차역들과 상기된 표정들의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진다. 올해는 유난히도 나이든 사람들의 귀성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여러명의 자식들이 부모를 보러 오는 것보다는 부모가 여러 자식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뒤에 앉은 할머니들의 사투리 섞인 대화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내가 가는게 여러모로 편하지, 자식들이 오는 것보다는."

 

매년 큰집에 내려가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았는데, 그건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내키지 않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나 혼자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불행. 하지만 의무감이 더 크게 작용하였기에 올해도 어김없이 기차표를 끊었다. 올해는 할아버지가 울산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해서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어린시절, 아버지보다도 더 큰 그림자를 드리웠던 할아버지. 큰 목소리와 곧고 빠른 걸음걸이를 가지신, 술을 밥보다 더 좋아하셨던 할아버지. 내겐 늘 그런 할아버지였는데, 입원하신 할아버지의 홀쭉한 얼굴과 퀭한 눈, 합죽이가 된 입, 그리고 잘라낸 다리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할아버지도 그런 나를 보고 눈물을 보였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 과거의 시간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표현할 길 없는 감정이 솟구쳐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왔다. 감정을 추스린 후에야 할아버지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고, 몇 마디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보인 눈물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방울의 눈물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올해는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다는 거창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강한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작년이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다. 사실 작년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맞는 말이긴 하다. 시간이란 틀에 가두거나 토막토막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나누어 놓은 시간의 틀에 올해는 유난히도 민감해지지 않는다. 이제는 그러한 것에 무뎌질 때도 되었다는 의미인지, 할아버지의 입원과 수술의 여파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올해는 차분하고 조금은 슬픈 감정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이것이 성숙해지는 것이라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리라. 모든 것이 지나가듯, 2012년의 설도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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