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믿음

시월의숲 2012. 4. 28. 18:29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확신에 찬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모바일 설문조사를 한다고 해서 잠깐이면 끝나겠거니 했는데, 그 설문조사란 것이 결국은 교회에 나오라는 미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설문조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재앙, 하나님, 의지나 믿음에 대해서 묻는 설문이 끝나자 곧이어 유월절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유월절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과테말라에 갑자기 생긴 커다란 구멍에 대해서 아느냐, 우리나라에도 그런 거대한 구멍이 생긴 것을 아느냐 등등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교회'에 나오라는 말로 수렴됨을 모르지 않았다. 기독교나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어찌 이토록 많은 종파와 그에 따른 믿음이 파생되어 나왔는지 순간 의아했다. 그건 또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더이상 말이 길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젊은 여전도사에게 말했다. 나는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후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당신이 말한 그 '하나님의 교회'에 스스로 나가겠노라고. 착하게 생긴 전도사는 알았다고 말했고, 나는 문을 닫았다. 알 수 없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의문에는 얼마간의 부러움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확신에 찬 믿음, 믿음으로서 오는 저 당당하고 찬란하기까지한 확신! 나는 그 태도가 얼마간 부러웠던 것이다. 확신에 찬 믿음은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게 해서 결국은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결코 가져보지 못한 감정이자 인식인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믿음이란 강요를 해서는 얻어질 수 없고, 강요에 의한 믿음은 결코 믿음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게 말해서 학습을 받은 것이고, 나쁘게 말해서는 세뇌를 당한 것일까? 창조적인 생각이란 것도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의 덧붙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젊고 착한 전도사의 확신에 찬 태도는 얼마간 나를 주눅들게 했고 종래에는 내 부러움을 사게 만들었다. 조금 불쾌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한 경험이었다. 확신에 찬 사람들의 발걸음엔 머뭇거림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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