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제프 다이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웅진지식하우스, 2014.

시월의숲 2015. 4. 6. 23:30



아마도 이 책을 소개하거나, 감상문을 적기 위해서는 반드시는 아닐지라도 거의 이 말을 언급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요가책이 아닙니다. 여행서입니다.'라고. 맞다. 이 책은 제목처럼  '요가책'이 아니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여행책'이다. 제프 다이어라고 하는, 영국 출신의 논픽션 작가이자 소설가가 쓴 여행기. 여행 산문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긴 하지만, 작가가 서두에서 밝힌바와 같이 이 책에 적힌 일들 모두가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중 몇몇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고 밝히고 있으며, 그러므로 당연히 책 속의 어느 부분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어느 부분이 그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일인지 알아낼 길이 없다. 하지만 그건 이 책을 읽는데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말했듯, 이 책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 역시 그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 어디에선가 일어났을지도 모르므로.


여행 산문집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쉽게 연상할 수 있는, 화려하고 다채로우며, 약간 들떠있고, 호기심의 끈을 놓지 않으며, 이국적인 문화를 소개하고, 진부한 깨달음을 과장된 감상에 젖어 읊어대는, 그런 종류의 글은 아니다. 뭐랄까, 이 책은 보다 가볍고 자유로우면서도 무겁고 쓸쓸하다. 그가 여행을 한 곳이 다름아닌 폐허이기 때문일까. 고대의 폐허이자 현대의 폐허. 그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분히 체념에 젖어 있고, 나이듦에 대한 안타까움과 소멸에 대한 쓸쓸한 인식이 책의 전반에 깔려있다. 그러한 깨달음, 지신도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 때문에 그가 폐허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폐허로의 여행이 그에게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는 폐허를 보면서 한 때는 충만했던 자신 안의 그 무엇이 사라져버렸고, 그것은 결코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잊어보려는 듯 약물에 취한다. 하지만 그조차 그의 텅 비어버린 마음을 채워주거나, 조각난 마음을 이어주지는 못한다. 사라져버린 것은, 무너진 고대 로마의 신전처럼 어떻게 하더라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동안 얼핏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가 떠올랐다. <토성의 고리>는 소설이지만, 논픽션을 바탕으로 픽션이 가미되었다는 점에서는 제프 다이어의 그것과 같았다. 제발트의 소설 또한 폐허를 다니며 느꼈던 황량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므로 제프 다이어의 책과 소재면에서도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제프 다이어는 '여행 산문집'이라는 이름으로, 제발트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는 점이랄까. 어쩌면 그것은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소설과 산문집을 가르는 명확한 기준은 무엇인가? 모든 소설은 얼마간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모든 산문에는 허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기억에 의지해서 쓴 여행기야 말로 소설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기억이란 찰나의 순간일 뿐인데. 기억에 의지해서 쓴 글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제프 다이어의 이 산문집 또한 소설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발트의 글 또한 소설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부족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므로.


하지만 이 책을 읽는데 그러한 비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산문이든 소설이든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에게는 목적도 방향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삼십 대 때보다 훨씬 적게 생각한다는 것, 나 스스로 빠른 속도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32쪽).' 중요한 건 그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아 간다는 것. 하지만 그는 또 이렇게도 적었다. '작은 배를 타고 어딘가를 떠나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물결의 움직임, 엔진이 내는 소리, 삶을 뒤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의 일부는 그곳에 남는다. 죽음도, 최고의 죽음이라면 아마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이지만, 또 모든 것은 확장된 현재 안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130쪽).' 라고.


나도 언젠가는 삶을 뒤에 남긴채 이곳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떠나도 내 일부는 그곳에 남아 확장된 현재 안에서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익히 말해왔지만 아무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사실.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 안의 폐허를 아무렇지 않게 응시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