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듀나, 『가능한 꿈의 공간들』, 씨네21북스, 2015.

시월의숲 2015. 6. 13. 22:24



세상엔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묵살하거나 억압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13쪽)


그러니까 중요하진 않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은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고(책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고), 단순한 호기심이나 혹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책을 집어든 독자라 하더라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유난을 떠는 자의 투덜거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와 관련된 '중요하진 않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은 예상 외로 재밌고 유익하며(!), 생각하지 못한 것을 지적할 때는 놀라움과 함께 어떤 통쾌함마저 느껴졌다. 그것은 거대한 고정관념 혹은 편협함에 대한 맹렬한 공격일 때 더욱 그러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영화를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떠나서, 영화를 통한 삶의 태도, 시선, 방향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제목처럼 '가능한 꿈의 공간들'을 탐색하는 책인 것이다. 그것은 작가에게 있어 '영화'이기도 하고, 'SF'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작가가 왜 영화와 SF에 탐닉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두가지 모두 편협하고 아둔하며, 폭력적인 현실세계를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나또한 그런 '가능한 꿈의 공간들'을 꿈꾼다. 꿈꾸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얼마못가 인간들의 편협함과 둔감함, 무지에 질식하고 말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몇몇 문장들을 옮긴다. '우리가 세상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냥 인정하'자, '이해는 인정만큼 절실하지 않다', '늙었다는 것과 성숙은 동의어가 아니며 예술가들에게 젊음은 의무다', '꿈은 인간이 처음 본 영화다' 등등. 내가 하고 싶었던 말과 생각하지 못했지만 읽자마자 공감했던 말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이 거의 없었던 이유다. 공감하는 것 외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