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아카시아 향기와 통기타, 천장 위의 고양이 그리고 오월의 햇살

시월의숲 2018. 5. 10. 23:20

문을 열면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그 향기를 내 몸 가득 담는다. 녹음은 점차 짙어지고, 어느새 아카시아 꽃과 이팝나무의 하얀 꽃이 활짝 피었다. 곧 있으면 붉은 장미의 계절이 오겠지. 여전히 정신없이 지내는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통기타를 배우고 있다. 일만 죽어라 하다가 정말 죽을 것만 같아서, 뭐라도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얼마 치지도 않고 왼손가락이 아파서 타자를 치기가 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흥미가 생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걸 새삼 느끼지만, 업무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날려버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이 없었다. 처음에는 흥미가 없더라도 자꾸 해보면 흥미가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편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통기타를 배운다는 사실도 좋았다. 실은 첼로를 무척이나 배우고 싶었지만 교습소 같은 곳이 없어서 그냥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 앞에서 새로 들어선 첼로 교습소를 보았다. 나중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꼭 배워보리라 다짐했다. 지금은 통기타를 배울 시간도 겨우겨우 내고 있는 실정이니까. 아무튼 음악을 듣거나 연주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연주를 잘 한다거나 악보를 잘 보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몇 년 전에 우클렐레를 배우다 그만 둔 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는데, 이번에 통기타를 배우게 되어 그와 연계되어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우클렐레는 통기타보다는 좀 가볍고 경쾌하고 예쁜 소리가 나서 좋았는데, 통기타의 음색도 그리 나쁘지 않다. 언제까지 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조금이라도 늘겠지. 내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이라도 마스터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내가 통기타를 배우면서 바라는 점은 그것 뿐이다. 통기타를 배우러 간지도 벌써 세 번째가 되었다. 어쨌든 시간은 가고, 벌써 오월이 되었다. 요즘은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고 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하지 못한채. 어쩌면 그건 판단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간, 내 방 천장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아카시아 향기와 통기타, 천장 위의 고양이 그리고 오월의 햇살. 그렇게 나는 살아 있고,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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