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원래 다 그런 것

시월의숲 2018. 10. 15. 23:02

원래 다 그런 것. 나는 나의 삶이 있고, 당신은 당신의 삶이 있다. 나는 내 삶이 당신의 삶보다 평탄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원래 말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이기에. 어쩌면 당신이 말하지 않은 당신의 삶에 대해서 내가 너무나도 쉽게 단정짓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더 치열하게 당신의 삶을 살아왔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데. 당신과의 대화는 편안하고 당신이 풍기는 너그러움과 아량이 주위 사람들을 푸근하게 만든다는 것을 당신은 알 것이다. 나 또한 당신과 대화하면서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당신과의 대화는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당신이 말하는 가족과의 관계와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의 생활이 내게는 닿을 수 없는 먼 곳, 저 별처럼 빛나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또한 내가 가진 너그러움으로 당신의 말을 깊이 헤아리고 받아들였으나, 가슴 속 저 깊이 어떤 아득함이 느껴져서,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먼 곳을 바라볼 때의 아릿함이 느껴져서 결국 가슴 한 켠이 시리고 말았으니.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삶이 있고, 생활이 있고, 가족이 있고, 아픔이 있고, 연민이 있고, 이기심 또한 있을 것이다. 내게는 없는 것. 나는 결코 가질 수 없거나 다다를 수 없는 것. 하지만 당신에게는 있는 것. 원래 다 그런 것. 내 표정을 당신은 읽지 못했겠지. 나는 슬픔이라고 해야할까, 저 먼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를 애써 수습하느라 고개를 떨구었는데. 원래 다 그런 것. 나는 나의 삶이 있고, 당신은 당신의 삶이 있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나는 내 삶을,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