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문라이트

시월의숲 2018. 12. 2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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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결국 한 흑인 남자의 성장기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각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한 편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인 남자의 내면을 따라 흘러간다. 주인공의 말수가 적은 것도 그의 내면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외부적인 어떤 것도 그의 내면의 달빛 같은 한 줄기 푸른 빛을 어쩌지 못한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신 그 자체'였다. 자신이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고유의 빛은 주인공의 친구였던 케빈에 의해 촉발된다.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케빈에게 건네는 고백이 이 영화의 정점이 아닐까. 오랜 세월 마음 속에만 담아왔던 말을, 주저하면서도 어렵게 결심한 듯 단호하게 내뱉는 마지막 장면은 쉬 잊히지 않는다. 한 사람의 내면을 이렇듯 말없이도 절절하게 표현해 낼 수 있다니. 이것이 평론가 이동진이 말한 '영화적 마법'이란 것인가.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절제되고, 선명하며, 고요하고,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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