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올빼미의 울음』, 오픈하우스, 2015.

시월의숲 2019. 8. 11. 20:37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마 멧 데이먼과 주드 로가 주연한 영화 <리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리플리>라는 영화가 기억에 남아 있고, 그 영화의 원작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 씨>라는 사실 또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최근에서야 나는 그녀의 <올빼미의 울음>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어째서 <재능 있는 리플리 씨>가 아닌가? 이상하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올빼미의 울음>이라는 소설의 제목에 더 흥미가 생겼다. 어쩌면 배수아의 <올빼미의 없음>이라는 소설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 소설은 전혀 관련이 없지만, '올빼미'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마치 그 두 소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이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마치 필연적인 선택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그것이 그녀의 소설을 읽는 데까지 나아가게 했으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닐까?

 

그렇게 읽은 그녀의 소설은 뭐랄까, 읽는 내내 음울하고 불안한 기운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로버트라는 이혼남에 정신과 치료 경력이 있는 남자가 우연히 외딴집의 한 여자를 발견하고 그녀의 모습에 이끌려 몰래 훔쳐보다가 여자에게 결국 들킨다. 하지만 여자는 그를 경찰에 신고하기는커녕 집에 들여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급기야는 로버트의 묘한 매력에 끌려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녀의 약혼자인 그렉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로버트와 몸싸움을 벌이다 행방불명이 된다. 이후 로버트는 그렉을 죽인 범인으로 몰리게 되면서 사태는 점차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 대략 이런 내용이다.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시점이긴하지만, 로버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변태성욕자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 로버트의 심리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이 소설의 반전을 위한 트릭이 아닐까 생각했는데(이건 내가 요즘 반전에 집착하는 영화나 소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끝까지 내가 생각하는 반전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전개로 흘러갔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여자 혼자 사는 집을 훔쳐보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럴듯한 변명을 들이대는 주인공에서, 지극히 세심하고 여리며, 주위의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휘둘리게 되는 비련의 남자 주인공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한 건 주인공의 심리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었다는 게 반전이었다면 반전이었달까.

 

하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 로버트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이한 이끌림과 집착, 질투, 복수 등의 감정을 다루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그런 감정의 소용돌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로버트였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로버트가 제니를 몰래 엿보지 않았다면, 제니는 로버트와 사랑에 빠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녀의 약혼자 또한 로버트에게 복수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만약 그랬다면 로버트의 전 부인 또한 정신과 병력이 있는 전남편은 잊고 새로운 남편과 잘 살았을 것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은 가정이지만, 어쨌거나 모든 원인이 로버트를 가리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로버트는 그럴 수밖에 없는 내면의 충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나아가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소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므로) 어쩌면 그는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닌가? 제목인 <올빼미의 울음>은 바로 불길한 죽음의 상징인 로버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 제니가 로버트에게 말했듯이, 그녀는 로버트가 아니라 죽음에 이끌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이 소설은 자신도 의도치않게 주위의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기이한 남자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이스미스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그려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읽는 내내 그다음을 궁금하게 만들었으며, 벗어나!라고 외치는 순간 자신도 이미 깊은 수렁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되는(소설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소설이다. 이 여름에 더욱 잘 어울리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