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실존적으로 혐오스러운 존재

시월의숲 2022. 7. 30. 22:45

내게 단체 관광객이 된다는 것은 곧 어엿한 현대 미국인이 된다는 뜻이다.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고, 무지하고,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에 늘 욕심을 내고,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늘 실망하고 마는 미국인이. 그것은 내가 애초에 경험하겠다고 찾아갔던 훼손되지 않은 무언가를 얄궂게도 그런 내 존재로 훼손하는 일이다. 내가 없다면 경제적 측면 이외의 모든 면에서 오히려 더 좋고 더 진실된 장소가 될 곳에 나를 억지로 끼워 넣는 일이다. 기나긴 줄, 답답한 정체, 반복되는 흥정을 겪으면서, 너무나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내버릴 수도 없는 나 자신의 어떤 부분을 직시하는 일이다. 관광객으로서 나는 경제적으로는 유의미하지만 실존적으로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된다. 시체에 들러붙은 벌레 같은 존재가 된다.(313쪽,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랍스터를 생각해봐」 중에서 -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수록)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글을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아, 저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데! 하고 무릎을 칠 때가 있다. 그는 과거에 내가 느꼈던 어떤 감정들을 정확하고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채 표현해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유려하게 혹은 강박적으로 말이다. 위 글도 내가 평소 느꼈던 어떤 감정을 건드리고 있어서,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포스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시체에 들러붙은 벌레 같은 존재'에 대해서.

 

그는 미국의 최대 랍스터 축제를 취재한 글의 각주에 저 글을 실었다. 대체로 과격하고 불필요하게 신경질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그 표현에 나는 사로잡혔다. 그것은 내가 평소 사람들로 들끓는 여름철의 해수욕장이나 각종 축제 혹은 유명 관광지에 가면 드는 생각과도 같았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처럼 과격하지 않고, 다소 얌전하게 '아이스크림에 달라붙은 개미떼'라는 표현을 썼지만. 또 다른 점은, 그가 말하는 '시체에 들러붙은 벌레 같은 존재'는 일차적으로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속에 속하지 않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바닷가나 유명 관광지에 몰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르달까. 물론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나 자신이 바로 '아이스크림에 달라붙은 개미떼' 중 하나가 되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타인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혐오일 것이다. 나 자신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 그렇게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기는 싫다는 것. 물론 평범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말은 지나친 신경증적 과대망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그곳에 가며, 그가 말하는 '실존적으로 혐오스러운 존재'가 기꺼이 되기 위해 그곳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여름휴가철이 이미 시작되었다. 이번 여름에도(자의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 타의에 의해서라도) '내가 애초에 경험하겠다고 찾아갔던 훼손되지 않은 무언가를 얄궂게도 그런 내 존재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런 생각하지 않고 어딜 가든 그저 즐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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