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3. 8. 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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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 모양 이 꼴로 살다가 죽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세상 서럽고, 죽어서도 벌떡 일어날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이 모양 이 꼴이 어때서 라는 생각이 들면 그땐 그런대로 괜찮아지는 것이다.(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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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파트 2> 예고편도 그렇고 이번에 공개된 <웡카> 예고편을 보면서 새삼 느낀 것. 티모시 샬라메가 원래 그런 목소리였던가? 한껏 소리 지르는 장면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새삼 낯설어서, 이건 누구 목소리지? 했다.(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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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 설명하려고 하니 구차한 기분이 든다. 오해하라면 오해하라지. 어차피 우리는 오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사라져 갈 뿐인 존재들이 아닌가. 오해하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오해가 풀릴 날도 있을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아무도 그 오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서로 오해를 풀만한 애정과 관심이 없는 것이다!(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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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일단 그 사람 편을 들어주라고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네 말이 맞아, 당연히 기분이 나쁜 일이지, 어떻게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라고 맞장구만 쳐주면 되는 일인지. 그걸 조언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그는 내게 조언을 구하는 게 아니라 전적인 공감을 원하는 것인가?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조언을 구하려 할 때마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다. 그저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하면 되는 것인지, 그것이 상대를 진정 위하는 것인지.(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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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안 할 수도 없고, 말을 하자니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내가 괴롭고. 적당한 말을 적당한 타이밍에 적당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니, '적당한'이 아니라 '적절한'이 맞겠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 말로 인해 괴로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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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지려 하기 전은 없다. 그냥 슬픈 것이다. 슬픈 예감이란 없다. 그냥 슬픈 것이다. 오늘은 그렇게 슬프다. 그러니까 이 세상 그 누구에게든 내 마음을 다 드러내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란 모순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할지라도.(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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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단편적인 그 기억은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솟아나 나를 순간 얼어붙게 한다. 그럴 때면 그가 내게 끼친 영향과 내가 그에게 끼쳤을지도 모를(그런 게 있다면) 영향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것은 얼마나 멀고 얼마나 가까운가. 한 사람의 일생이란 무엇인지 나는 지금 여기서 무얼 해야 하고 무얼 할 수 있는지.(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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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아... 라는 말을 정색하며 싫어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 역시 흐리멍덩하게 말하고 싶지 않고, 때로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감정들, 어떤 느낌들은 도저히 '그래' 혹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다. 없는 순간이 있다.

 

그에게는 정말 그런 순간이 없었을까?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단호하게 나를 다그칠 수 있었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라는 말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말인 걸까.(202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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