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티엔은 편지를 썼다. 받을 사람 없었지만 편지의 내용이 아닌 편지를 쓰고 있는 기억이 남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본 것들을 적었다."(이상우, '배와 버스가 지나가고' 중에서 - 배수아 외,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미디어버스, 2020)
우리는 받을 사람이 없더라도 편지를 쓰며, 편지의 내용이 아닌 편지를 쓰고 있는 기억이 남아 이어지길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 편지의 내용이 아니라 편지를 쓰고 있는 기억이 남길 바라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202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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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알겠다. 오래전 내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골랐는지, 그리고 카드를 쓰면서 얼마나 설렜는지. 그리고 생각해 냈다. '편지를 쓰고 있는 기억이 남길 바라는 마음'이 어떤 건지. 그 마음은 이 계절 즈음에 생겨난 이상한 현상이란 걸.
그때 나는 카드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 카드를 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문구점 가득 올려져 있던, 상상력을 자극하는 색색의 카드들과 거기에 담긴 알 수 없는 기대로 충만했던 순간들. 나는 마치 사로잡힌 듯, 그 마법의 순간들 속에서 혼자 행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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