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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게보르크 바흐만, 《삼십세》, 문예출판사, 2000.

그는 자기 주변을 에워싼 인간들에게 결별을 고하리라. 그리고 가능하면 새로운 인간들에게도 접근하지 않으리라. 그는 이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 수가 없다. 인간들은 그를 마비시키고 그들 나름대로 자기네에게 유리하게만 그를 해석했다. 얼마 동안 한 장소에서 살다보면 사람들은 너무나 여러 모습으로, 소문 속의 모습으로 배회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주장할 권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만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뿐만 아니라 영원히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놓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여기서는, 그가 오래 전부터 붙박고 살아왔던 이곳에서는 그러한 생활을 시작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자유로워질 수 있는 로마에서라면 시도해볼 수 있으리라. 그는 로마에 도착한다. 그리고 일찍이 타인들의 마음에 남겨두었던 자신의 과거 모습에 부딪힌..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자고 일어나니 2011년이 되었고, 새해 첫날 나는 장염에 걸려 응급실까지 갔었다. 장염은 내 오랜 친구와도 같이 잊어버릴만 하면 한번씩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 때문에 나는 조금 지쳤고, 때로 피곤했으며, 그래서 잠이 많이 모자라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책을 읽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으며,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 아니 책이 읽히지 않고, 음악도 들리지 않으며, 텔레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인터넷 세상만 들락거리고 있지만 그것도 그닥 신통하지는 않다. 모든 것들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시들어가고 있다. 사실은 내가 시들어가고 있는 것일테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아팠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와서 방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만난 한 여승이 생..

어느푸른저녁 2011.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