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 12

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2009.

우리가 받는 수업은 우리에게 인내와 복종을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둔다. 이 두 가지 특성이 몸에 밴 채료는 성공한 턱이 없다, 아니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7쪽)  *  샤흐트는 매우 하얀 얼굴과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졌다. 그들은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영혼의 고통을 보여주는 것 같다.(14쪽)  *  나는 하소연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하소연을 듣고 나면 상대방을 보다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되며, 그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동정심을 갖게 된다.(15쪽)  *  무엇인가를 잃는다는 것, 그것에도 향기와 힘이 있다.(23쪽)  *  어떤 종류의 솔직함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지루하게 만들 뿐이다.(24쪽)  *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우스꽝..

인간이란 모두 어딘가에 더해진 존재이다

이 문장이, 이승우의 소설 《그곳이 어디든》의 맨 앞장에 나와 있었다. 어쩌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의 기쁨보다, 어디선가 보거나 읽은 것, 한 번쯤 들어본 것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더 큰 반응(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건 '인간이란 모두 어딘가에 더해진 존재'이기 때문일까. 내가 이승우의 《그곳이 어디든》을 갑자기 들춰보게 된 건, 같은 작가의 산문집 《고요한 읽기》 때문이었다. 그 책에 《그곳이 어디든》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이승우가 쓴 산문집을 읽고 그가 쓴 다른 책들이 뭐가 있는지 보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고, 읽은 책들 말이다.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 하지만 언젠가 읽었던 것이 분명한 - 그의 소설들을 보면서 그의 책에 대해서 생각한다..

흔해빠진독서 2025.03.09

고요한 읽기

우리는 문장으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내가 하는 생각은 내 안에서 나온 것이고, 그러니까 내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생각은 어떤 문장의 작용 없이는 태어날 수 없는 것이니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끌려 나와 모습을 보이기까지 그 생각이 내 안에 있었는지조차 모를 테니까요.(이승우, 《고요한 읽기》 중에서)  *내 독서 방법은 이것이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문장들이 적힌 페이지를 메모해 둔다. 책을 다 읽으면 메모해 둔 페이지의 문장들을 블로그에 옮긴다. 블로그에 옮기면서 다시 한번 더 그 문장을 읽는다. 그렇게 두 번 정도 읽고(엄밀히 말해 두 번 읽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책을 덮는다. 그렇게 읽은 책을 내 책상 왼 편 - 눈에 잘 띄..

흔해빠진독서 2025.03.08

미키 17

《미키 17》을 봤다. 평소 텅 빈 영화관에 오늘은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지금까지 영화관이 유지되고 있는 게 기적일 정도의 동네에 살고 있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의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재미있었다. 이전 영화였던 《기생충》과 같은 둔중하고 혼란스러운 충격파는 없었지만, 《옥자》나 《설국열차》가 떠오르면서, 그와는 미묘하게 다른, 이 영화만의 개성과 재미가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과 후에, 소위 영화평론가들의 별점과 한 줄 평을 읽는다. 당연하게도 영화를 보기 전에 보는 평은, 그 영화에 대한 기대랄까, 대략적인 느낌을 알 수 있다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는 평은 내 생각과 그들의 말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씨네 21에 올라온 전문가 평 중에 '어느덧 ..

봄날은간다 202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