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육사 백일장에 다녀오다

시월의숲 2005. 8. 1. 21:31
 

이육사 백일장을 다녀왔다.

이육사... 고등학교 때 그의 시를 접한 이후,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대학 수업시간에 그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어제는 급기야 이육사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고.

 

물론 나는 이육사 백일장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으나(아니, 솔찍히 말해서 관심이 없었다기 보다는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데 따른 조바심이랄까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ㅜㅠ) 며칠 전에 걸려온 교수님의 전화 때문에 결국 참가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말았다. 안동에서는 이육사 백일장 뿐만 아니라 며칠동안 '안동 문학제'라고 해서 강연회 및 토론회, 육사기념관 및 생가 견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나는 백일장에 참가한 것이다.

 

백일장은 안동댐에 있는 민속박물관에서 열렸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의 참여가 적었다. 그것은 아마도 이육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뜨거운 날씨 탓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날씨만큼 이육사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그런 날씨 속에서 몇시간이고 앉아 글을 쓰려니 머리에 쥐가 다 날 지경이었다.  

 

백일장은 초등, 중고등, 대학일반부 이렇게 나누어서 치뤄졌는데 시와 산문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글제를 받았다. 내가 속한 대학일반부 산문 부분에 주어진 글제는 '풀, 둥지, 신호등' 이었는데 나는 '둥지'라는 글감으로 글을 썼다.

 

더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 있는 나로서는 종이 위에다 글을 써서 원고지로 옮기는 작업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키보드로는 글을 쉽게 수정할 수 있고 아무리 수정을 해도 화면이 지저분해지지 않는데 반해 종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글도 술술 써지지 않았고, 생각이 막히기 시작하면 한참을 끙끙거리며 생각한 후에야 겨우 몇 줄을 쓸 수가 있었다. 그러다 마감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3분의 2정도 밖에 원고지에 옮겨 적지 못했다. 다급한 마음에 글을 쓰느라 맞춤법이나 원고지 작성법 같은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글씨는 당연히 엉망이 되었다. 아, 정말...

 

집에 와서 곰곰히 백일장에 대해 생각해보니, 글쓰기 대회란 것에 대해 새삼 회의가 들었다. 글쓰기란 그렇게 해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인가에서 부터, 평가 받기 위한 글쓰기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까지... 물론 상을 받으면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일테니 기분이야 좋겠지.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닐까. 그 이후엔?

 

하긴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긴 하다. 마음 속으로는 나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인정받고 싶어하면서... 글쓰기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나'와 만나는 행위임과 동시에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행위이기도 하니까.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생애 두 번째로 나가보는 글쓰기 대회였던 이육사 백일장... 아주 먼 훗날, 내가 이날을 어떻게 기억할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무척 더웠다는 것과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벌겋게 익어버린 얼굴과 두 팔 뿐이었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육사는, 이 뜨거운 여름보다 더욱 뜨거운 가슴으로 생을 살았겠지. 이육사 백일장에서 날씨가 더웠다는 말만 잔뜩 늘어놓은 나 자신이 무척이나 창피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 백일장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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