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와는 다른 사람

시월의숲 2012. 1. 10. 21:38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얼마간 흥미진진하면서도 얼마간은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회식자리에서 그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에 걸맞게 목소리가 남들의 두 배는 컸으며, 웃음소리 또한 식당이 떠나갈듯 울릴 정도였다. 스스로도 잘 웃지만, 남들을 웃기기도 잘해서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개그맨은 저리가라였다. 참고로 그의 성별은 여자인데, 여자라고 목소리가 크지 말란 법도 없고, 여자라고 술을 마시지 말란 법도 없고, 여자라고 욕을 해서는 안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모두들 그런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것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반해 그는 눈꼽만큼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으며, 에너지로 충만하고, 저돌적이며, 거침이 없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그를 보면서 저렇듯 뜨거운 열기를 가진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고, 흉내조차 내기 힘든 것이라서 더욱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보였다. 그와의 대화(아니 대화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는 세찬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것과 같았다. 그가 구사하는 거대한 말의 파도에 나는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작은 돛단배일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처음의 흥미로움과 유머는 사라지고 피곤함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는 그리 강요하지 않았으며, 예의를 알았다. 그는 아마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나를 생각할 것이다. 차이에서 오는 신선한 충격은 재미있으나, 그것이 지속될 경우 나는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 내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일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지 않을만큼의, 더이상 다가가지도, 다가오지도 못할만큼의 거리. 고작 한 번의 대화로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걸보면 나는 정신적으로 얼마간 불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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