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고리

우리는 결코 그 성당의 완성을 볼 수 없어

시월의숲 2023. 2. 1. 21:43

사라고사, 필라르 대성당
톨레도 대성당
톨레도 대성당의 내부
톨레도 대성당 내부
톨레도 대성당의 내부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
포르투갈, 파티마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내부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내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외부, '고난의 파사드' 부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고난의 파사드' 부분

 

중세시대의 성당을 알아?”

성당?”

하나의 성당이 완성되려면 삼사백 년씩 걸렸던 성당들 말이야. 거기 하나하나 벽돌을 놓던 인부들……. 그들은 결코 그들의 생애에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했지.”

그는 편지봉투에 성당과 인부를 끄적여 그리면서 말했다.

결국 우리가 그 사람들과 같지 않을까. 우리가 평생에 걸쳐서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고 해도, 결코 그 성당의 완성을 볼 수 없어.”

 

- 한강,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중에서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바르셀로나까지 무려 열여섯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탔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밤이었고, 우리들은 곧장 호텔로 가서 잠을 잤다. 스페인에서의 제일 처음 일정은 사라고사에 있는 필라르 대성당을 보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필라르 성당이 있는 사라고사까지 가기 위해 오전 내내 차로 이동을 했다. 비행기에서부터 시작해서 호텔에 도착해서도, 이동하기 위한 차량 내에서도 계속 잠을 잤지만, 감기 기운과 피로, 시차 때문인지 꿈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몽롱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몽롱한 상태로,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스페인의 첫 일정이 시작되었다. 가이드는 말했다. 자신의 종교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단 유럽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그건 성지 혹은 성당 순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어쩌면 유럽 여행이란 성당을 보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 말을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 포르투갈의 리스본이나 파티마에서도 우리들은 여지없이 성당을 보았던 것이다.

 

내가 보았던 성당과 수도원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보고 싶다. 11개의 지붕과 성당 내부의 천장화가 인상적이었던 사라고사의 필라르 대성당, 도시 전체가 아름답고 고즈넉했던 톨레도의 대성당, 여느 도시보다 활기에 차 있던 세비아의 대성당, 포르투갈 리스본의 벨렘 지구에 있던 제로니모스 수도원, 역시 포르투갈 파티마에 있던 성모 발현 대성당, 절벽 바위산 위에 세워져 있던 바르셀로나의 몬세라트 수도원, 마지막으로 저 유명한 가우디가 만든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라아 대성당까지.

 

그 성당들이 지닌 역사적 의의와 미학적 양식에 대해서 말할 깜냥이 내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각각의 성당들이 지닌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들, 특히 성당들이란 어쩌면 그런 곳이리라. 가톨릭이나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매료될 수밖에 없는.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던 성당은 몇 안되지만(연말 휴가 기간에 간 성당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문을 닫았다) 그 외관만으로도 없던 신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톨레도 대성당의 내부도 놀라웠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내부는 가히 눈을 떼지 못했다. 가우디 말년의 역작인 그 건축물은 유서 깊은 중세 성당들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아니, 아름다움의 포인트가 조금 달랐다고 해야 할까?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가우디 특유의 자연 친화적인 건축 양식들이 어우러져 매우 독특한 매력을 뿜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거대한 나무들이 서 있는 것만 같던 성당 내부의 기둥들과 스테인드 글라스로 쏟아져 들어오던 찬란한 빛의 향연이 나를 잠시나마 지상이 아닌 다른 곳에 데려다 놓는 것만 같았으니.

 

중세시대 성당의 벽돌을 놓던 인부는 아니었지만, 가우디 역시 자신이 짓던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짓고 있는 그 성당의 완성된 모습을 나 역시 보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아직 성가족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다만 그곳에서 미완성의 성당을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완성'된 성당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유럽의 성당들을 보면서 나는 하느님의 위대함이랄까, 전능함, 성스러움, 뭐 그런 것들보다는 그 성당을 만든 인간들의 위대함을 느꼈다. 인간들이란 어디까지 그 불가사의에 가 닿을 수 있는가. 신성(神聖)이란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믿는 인간들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신실한 신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성당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니, 문득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대성당이 생각나서 소설을 찾아 다시 읽었다. 소설 속 화자와 장님이 함께 성당을 그리게 된 계기가 마침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포르투갈의 한 성당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도 다녀온 나로서는 그것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당연하게도) 성당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장님은 화자에게 성당을 함께 그려보자고 말한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만,” 나는 난감했다. “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설명할 재간이 없군요. 무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조금 전에 얘기한 것 말고는 도무지 생각나는 게 없군요.”

그때, 갑자기 장님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좋은 수가 있소, 친구. 그냥 우연히 떠오른 생각이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요. , 내 말 잘 들어 봐요. 부탁 한 가지 합시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 어디서 두꺼운 종이 한 장 구해 오시겠소? 펜하고 말이오. 우리 둘이서 한번 해봅시다. 같이 그림을 그려 보자는 얘기요. , 친구, 종이하고 연필을 가져와 봐요.”(레이먼드 카버, 대성당중에서)

 

그렇게 그들은 함께 성당을 그린다.

 

어때요?” 그가 흥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보고 있소?”

나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내 집 거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어딘가의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말 멋진 그림이군요.” 내가 중얼거렸다.(레이먼드 카버, 대성당중에서)

 

나 역시, 스페인의 성당들을 보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분명히 성당 안에 있었지만 도무지 어딘가의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성당이란 그런 곳이 아닐까. 물론 나는 소설 속 장님과는 달리 그 성당들을 직접 보았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처럼 성당을 보고서도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기란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니던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다녀온 후로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나는 내가 본 것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는가, 하고. 그럴 때면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수밖에.

 

, 친구, 종이하고 연필을 가져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