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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안부

너는 자주 내게 부럽다고 말했지. 내가 하는 모든 것들, 혼자 영화를 보고, 공연을 관람하고, 책을 쌓아놓고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가의 CD를 사서 듣고, 영어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하거나, 우쿨렐레를 배우는 것, 그러니까 나 혼자 하는 모든 행위들이 자유롭고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너는 늘 죽지 못해 산다고 말했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네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이고,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너는 모를거야. 언젠가 나는 자주 그런 말을 하는 네게, 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일뿐, 누가 더 행복하거나 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라고 말했지. 하지만 너는 내가 하는 말을 깊이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단지 어설픈 위로의 말처럼 들렸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는 알겠니. 내가 하는 모..

어느푸른저녁 2014.06.16

토마스 베른하르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필로소픽, 2014.

파울이 수년 동안 그 자신의 광기에 휩싸인 채 죽음을 향해 내달렸듯이, 나 역시 수년 동안 나 자신의 광기에 휩싸인 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내달린 것이 맞다. 그러다 파울의 경우는 매번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죽음의 질주가 일단 중단되곤 했으며, 내 경우는 매번 폐..